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19세기 전반에 활동한 학자이자 서화가로. 이 현판은 완당의 만년(63~65세)에 쓴 것이다. 단 연죽로시옥 (端硏竹爐詩屋)은 단계(端溪) 벼루, 차 끓이는 대나무 화로 그리고 시를 지을 수 있는 작은 집이란 뜻이다. 이 시기의 완당 글씨는 파격미 내지 개성미, 이른바 '괴(怪)' 가 완연히 드러난다. 특히 글자의 구성에서 대담한 디자인적 변형을 시도하고 있다. 추사체 조형미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는 이 글은 서체의 기본은 예서체로 되어있지만 자획의 운용에는 전서기(篆書氣)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글자의 구성미. 즉 디자인은 대단히 멋스럽고 획의 흐름에서 리듬조차 감지된다. 제주 유배이후 서울 한강 노량진이 건너다보이는 용산의 강마을에 머물렀던 시절의 아호인 삼묘(三泖) 노희(老䲣)로 사인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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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죽로시옥
영남대학교박물관
명칭단연죽로시옥
다른명칭端硏竹爐詩屋
국적/시대한국 - 조선
분류문화예술 - 서화 - 글씨 - 일반서예
재질종이
특징(유리횡액자) 추사체.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19세기 전반에 활동한 학자이자 서화가로. 이 현판은 완당의 만년(63~65세)에 쓴 것이다. 단 연죽로시옥 (端硏竹爐詩屋)은 단계(端溪) 벼루, 차 끓이는 대나무 화로 그리고 시를 지을 수 있는 작은 집이란 뜻이다. 이 시기의 완당 글씨는 파격미 내지 개성미, 이른바 '괴(怪)' 가 완연히 드러난다. 특히 글자의 구성에서 대담한 디자인적 변형을 시도하고 있다. 추사체 조형미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는 이 글은 서체의 기본은 예서체로 되어있지만 자획의 운용에는 전서기(篆書氣)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글자의 구성미. 즉 디자인은 대단히 멋스럽고 획의 흐름에서 리듬조차 감지된다. 제주 유배이후 서울 한강 노량진이 건너다보이는 용산의 강마을에 머물렀던 시절의 아호인 삼묘(三泖) 노희(老䲣)로 사인되어있다.
작가김정희(金正喜)
크기가로 180cm, 세로 81cm
소장품번호
소장
10982
촬영연도
0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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