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응태가 유운을 위해 쓴 석탄정 비문

국립전주박물관

원본 해상도 2145 * 1488


  • 명칭심응태가 유운을 위해 쓴 석탄정 비문
  • 다른명칭石灘亭碑文
  • 국적/시대한국 - 조선
  • 분류문화예술 - 기타
  • 재질지 - 저지
  • 작가심응태
  • 크기세로 23.5cm, 가로 224.5cm
  • 소장품번호 황 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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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장품설명 1862년(철종 13) 5월에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承政院) 좌부승지(左副承旨) 겸(兼) 경연참찬관(慶宴參贊官) 수찬관(修撰官) 춘추관(春秋館) 조석원(曺錫元)이 짓고 통정대부 이조참의(吏曹參議) 심응태(沈膺泰)가 쓴 석탄정(石灘亭) 비문이다. 석탄은 유운(柳澐)의 호이며 석탄정은 그가 말년에 편히 쉬기 위하여 지은 정자이다. 유운의 자는 심부(深夫)이다. 그는 충정공 탁(濯)의 7대손이며 사직공 춘영(春英)의 아들로 중종 2년(1547)에 태어나 18세에 남쪽 모양(牟陽)의 주곡(蛛谷)으로 내려와 살았다. 당시 문장이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며 여러 현인들에게 추앙받았으나 명리에는 욕심이 없었다. 음직(蔭職)으로 청암도(靑巖道) 채방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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