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및 발달과정> 우리 나라의 유기[銅으로 만든 器物]는 그 시원을 따지자면 멀리 금속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청동기시대로 올라가 청동기의 제조에서부터 그 시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4세기경에 금·은·동·철이 산출되었고, 백제는 일본에 제련 및 세공기술을 전해 주었음이 『日本書紀』에도 기록되어 있다. 신라에서는 철유전(鐵鍮典)이라는 유기 전문 기구를 두어 유기제작을 전담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신라의 양식을 계승하여 12세기에 들어오면서 동제향로 등을 많이 만들기 시작하였고 각종 불구와 불상, 크고 작은 범종을 비롯하여 각종 유기가 만들어져 이때부터 유기가 식기로서 상류층 가정에서 사용된 듯하다.
<일반적 형태, 특징> 오늘날과 같이 밥, 국을 담을 수 있는 음식기로 사용된 것으로, 보통 둥글넓적하며 바닥이 깊은 아래 그릇과 위를 덮는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청동합은 바닥에 굽이 있고 반구형의 뚜껑이 덮이며 2단의 보주형(寶珠形) 꼭지가 붙어 있다. 보주형 꼭지를 중심으로 태선을 둘렀고 뚜껑중간부분과 테두리부분에도 태선이 둘려져 있다. 합의 몸체는 편구형이며 나팔형인 바닥의 굽에도 두 쌍의 태선이 굽의 상단과 하단부에 돌려져 있다. 이와같은 형태의 용기는 신라 고분에서 출토되었고 안압지와 황룡사(皇龍寺) 심초석(心礎石) 하부(下部)에서 발견된 청동합과도 비슷한 형태이다.
특징<정의>
청동으로 만든 바리형의 음식을 담는 뚜껑 있는 그릇.
<유래 및 발달과정>
우리 나라의 유기[銅으로 만든 器物]는 그 시원을 따지자면 멀리 금속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청동기시대로 올라가 청동기의 제조에서부터 그 시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4세기경에 금·은·동·철이 산출되었고, 백제는 일본에 제련 및 세공기술을 전해 주었음이 『日本書紀』에도 기록되어 있다. 신라에서는 철유전(鐵鍮典)이라는 유기 전문 기구를 두어 유기제작을 전담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신라의 양식을 계승하여 12세기에 들어오면서 동제향로 등을 많이 만들기 시작하였고 각종 불구와 불상, 크고 작은 범종을 비롯하여 각종 유기가 만들어져 이때부터 유기가 식기로서 상류층 가정에서 사용된 듯하다.
<일반적 형태, 특징>
오늘날과 같이 밥, 국을 담을 수 있는 음식기로 사용된 것으로, 보통 둥글넓적하며 바닥이 깊은 아래 그릇과 위를 덮는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청동합은 바닥에 굽이 있고 반구형의 뚜껑이 덮이며 2단의 보주형(寶珠形) 꼭지가 붙어 있다. 보주형 꼭지를 중심으로 태선을 둘렀고 뚜껑중간부분과 테두리부분에도 태선이 둘려져 있다. 합의 몸체는 편구형이며 나팔형인 바닥의 굽에도 두 쌍의 태선이 굽의 상단과 하단부에 돌려져 있다. 이와같은 형태의 용기는 신라 고분에서 출토되었고 안압지와 황룡사(皇龍寺) 심초석(心礎石) 하부(下部)에서 발견된 청동합과도 비슷한 형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