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장품설명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獨立新聞)’의 1897년(建陽2) 7월 6일 화요일 자 신문이다. 한말의 독립운동가 서재필(徐載弼, 1864-1951)이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 급받아 1896년 4월 7일에 창간하였다.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 報)’가 정부에서 발간한 신문으로 한문으로만 기사를 썼던 데 반해 독립신문의 국문 판(국문판과 영문판 두 가지 신문으로 발행됨)은 민중을 위해 알기 쉬운 신문을 만들 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며 신문의 중요성을 일반에 널리 인식시켜 이후에 여러 민간 신문이 창간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31.6×23.3cm의 소형 크기 지면이 1~4면까지 총 4 면을 이루며 기사가 3단으로 실려 있다. 1면 맨 위에 ‘독립신문’이라 신문의 표제 를 큰 글자체로 마련하고 ‘독립’과 ‘신문’글자 사이에 태극기를 인쇄해 넣었다. 표제의 좌우에는 ‘뎨이권’, ‘뎨칠십구호’라 호수를 명시해 놓았다. 본문은 순한 글 세로쓰기로 되어있고, 소제목이 ‘론셜’, ‘관보’, ‘외국통신’, ‘젼보’, ‘각부신문’, ‘외방통신’, ‘잡보’, ‘광고’ 순으로 나누어져 있다. 배재학당 의 방학예식에 관한 글처럼 가벼운 기사에서부터 창씨개명과 같은 당시 국내 상황과 미국의 하와이 지배와 이에 대한 주변 열강들의 반응과 같은 국제 정세를 알리는 기 사가 게재되어 있다. 광고란에는 세창양행(世昌洋行)의 광고와 같이 간단한 도안을 곁들이기도 하였다. 신문의 가장자리 몇 곳이 찢어져 있고, 1면부터 4면까지 왼쪽 상 단에 얼룩이 묻어 있으나 전반적인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특징한국 최초의 민간 신문인 ‘독립신문(獨立新聞)’의 1897년(建陽2) 7월 6일 화요일
자 신문이다. 한말의 독립운동가 서재필(徐載弼, 1864-1951)이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
급받아 1896년 4월 7일에 창간하였다.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漢城旬
報)’가 정부에서 발간한 신문으로 한문으로만 기사를 썼던 데 반해 독립신문의 국문
판(국문판과 영문판 두 가지 신문으로 발행됨)은 민중을 위해 알기 쉬운 신문을 만들
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며 신문의 중요성을 일반에 널리 인식시켜 이후에 여러 민간
신문이 창간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31.6×23.3cm의 소형 크기 지면이 1~4면까지 총 4
면을 이루며 기사가 3단으로 실려 있다. 1면 맨 위에 ‘독립신문’이라 신문의 표제
를 큰 글자체로 마련하고 ‘독립’과 ‘신문’글자 사이에 태극기를 인쇄해 넣었다.
표제의 좌우에는 ‘뎨이권’, ‘뎨칠십구호’라 호수를 명시해 놓았다. 본문은 순한
글 세로쓰기로 되어있고, 소제목이 ‘론셜’, ‘관보’, ‘외국통신’, ‘젼보’,
‘각부신문’, ‘외방통신’, ‘잡보’, ‘광고’ 순으로 나누어져 있다. 배재학당
의 방학예식에 관한 글처럼 가벼운 기사에서부터 창씨개명과 같은 당시 국내 상황과
미국의 하와이 지배와 이에 대한 주변 열강들의 반응과 같은 국제 정세를 알리는 기
사가 게재되어 있다. 광고란에는 세창양행(世昌洋行)의 광고와 같이 간단한 도안을
곁들이기도 하였다. 신문의 가장자리 몇 곳이 찢어져 있고, 1면부터 4면까지 왼쪽 상
단에 얼룩이 묻어 있으나 전반적인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