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장품설명1965년에 해체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제1층 옥개석 중앙과 기단부에서 19매의 금은제 금강경판과 사리내함, 사리병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제작시기는 백제 무왕 때일 것으로 추정된다. 왕궁리 석탑의 사리 장엄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귀중한 자료이며, 각종 금속 제품은 공예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연구되고 있다. 금강경판은 종이에 쓴 사경과 마찬가지로 금속판에 불경을 새긴 것이다. 경판 19매가 첩으로 이루어졌으며, 각각의 판에 17행 17자가 새겨져 있다. 사경체(寫經體)의 문자로 금강경을 한 면에 눌러 찍은 것이 뚜렷하다. 글자 모양으로 보아 목판에 문자를 새기고, 그 위에 대고 두들겨서 글자를 찍었다고 추측된다. 위아래에서 작은 경첩으로 연결하여 계속 볼 수 있도록 하였고, 다시 가느다란 금판대(金板帶)로 묶게 되어 있다. 은판에 금도금을 한 것으로 밝혀졌고, 경판의 글씨체를 분석한 결과 무왕 대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징1965년에 해체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제1층 옥개석 중앙과 기단부에서 19매의 금은제 금강경판과 사리내함, 사리병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제작시기는 백제 무왕 때일 것으로 추정된다. 왕궁리 석탑의 사리 장엄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귀중한 자료이며, 각종 금속 제품은 공예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연구되고 있다.
금강경판은 종이에 쓴 사경과 마찬가지로 금속판에 불경을 새긴 것이다. 경판 19매가 첩으로 이루어졌으며, 각각의 판에 17행 17자가 새겨져 있다. 사경체(寫經體)의 문자로 금강경을 한 면에 눌러 찍은 것이 뚜렷하다. 글자 모양으로 보아 목판에 문자를 새기고, 그 위에 대고 두들겨서 글자를 찍었다고 추측된다. 위아래에서 작은 경첩으로 연결하여 계속 볼 수 있도록 하였고, 다시 가느다란 금판대(金板帶)로 묶게 되어 있다. 은판에 금도금을 한 것으로 밝혀졌고, 경판의 글씨체를 분석한 결과 무왕 대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크기길이 14.8cm, 너비 13.7cm
국가지정유산국보
소장품번호
신수
2129
촬영연도
0
~ 0
제 1유형 : 출처표시
저작권 보호분야 “금제 금강경판”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